국제해운산업에 탄소세를 도입하는 계획이 최종 문턱에서 불발됐다. 국제해사기구(IMO)는 현지 시각으로 지난 17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해양환경보호위원회 2차 임시회의(MEPC ES.2)에서 국제해운에 탄소세를 도입하는 내용의 슬롯 커뮤니티 조치(NetZero Framework, NZF) 채택을 1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5000t(총톤) 이상의 국제 항해 선박이 온실가스 집약도(GFI)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초과 배출한 온실가스에 비례해 부담금을 내고 목표를 달성하면 인센티브를 받는 게 슬롯 커뮤니티 조치의 핵심 내용이다.
IMO는 이번 회의에서 해양오염방지협약(MARPOL) 부속서 6장을 개정해 슬롯 커뮤니티 조치 도입을 채택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미국과 주요 산유국들의 반대가 커 뜻을 이루지 못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탄소세 가격을 두고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 슬롯 커뮤니티 조치 도입 연기를 요구했다. 미국은 슬롯 커뮤니티 조치를 찬성하는 국가에게 관세와 비자 제한 등의 보복 조치를 취하겠다고 압박했다.
반대 의견이 거세게 대두되자 싱가포르가 충분한 협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이유로 슬롯 커뮤니티 조치 채택을 연기하는 안건을 제출했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이 안건을 표결에 부칠 것을 요청했다.
회의가 난항을 겪자 결국 IMO는 표결에 들어갔고 찬성 57, 반대 49, 기권 21, 불참 8의 결과가 나오면서 슬롯 커뮤니티 조치 채택을 내년 10월로 미루는 안건이 확정됐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카타르 리비아 나이지리아 에콰도르 등 석유 수출국 기구(오펙) 회원국과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이스라엘 등이 슬롯 커뮤니티 조치 연기를 지지했다. 북한도 탄소세 채택을 1년 유예하자는 의견에 찬성표를 던졌다.
반면 영국과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페인 덴마크 같은 주요 유럽 국가와 캐나다 브라질 칠레 멕시코 등 일부 미주 국가는 1년 연기 안건에 반대표를 행사함으로써 당장 채택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채택 연기 안을 제출한 싱가포르도 표결에선 반대표를 던졌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 슬롯 커뮤니티 조치 연기를 반대한 건 싱가포르가 유일하다. 우리나라와 일본 그리스 등 주요 해운 선진국은 기권했다.
앞서 지난 4월 열린 MEPC 83차 회의에선 EU 27개국, 브라질 중국 인도 캐나다 영국 한국 일본을 포함한 63개국이 슬롯 커뮤니티 조치 도입을 승인하고 16개 산유국 등만 반대했지만 반 년 만에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
슬롯 커뮤니티 조치 채택이 1년 미뤄지면서 IMO가 수립한 탈탄소 계획표도 차질을 빚을 걸로 예상된다. IMO는 슬롯 커뮤니티 조치를 2027년 3월1일부터 시행해 2028년 한 해 측정한 연료 소모량을 근거로 2029년부터 탄소세를 부과할 예정이었다.
IMO 아르세니오 도밍게스(
사진 속 발언자) 사무총장은 국제협약 개정안을 채택하면 16개월 후에 발효되고 각국 정부가 이를 국내법에 반영하는 입법 절차를 들어 당초 계획한 일정에 맞춰 슬롯 커뮤니티 조치를 시행하는 게 어려워졌다고 평가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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