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운송 실무에서 선하증권(Bill of Lading)은 운송물의 인도청구권을 표창하는 유가증권으로, 화물 인도 시 매우 중요한 서류다. 하지만 실제 운송 과정에서는 신용장 개설이나 은행 처리 등의 문제로 원본 선하증권이 도착하기 전에 화물이 항만에 먼저 도착하는 일이 잦다. 이때 수입자는 체화료나 보관 비용 부담을 피하고자 화물선취보증서(L/G; Letter of Guarantee, 이하 ‘LG’)를 제출해 선하증권 원본 없이 화물을 우선 인도받기를 원하게 되고, 운송인도 이러한 실무적 필요에 따라 LG를 받고 인도를 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사실상 상관습으로 자리 잡은 LG의 활용이지만, 이와 관련한 우리 대법원의 입장은 명확하다. 1992년 2월14일 선고된 91다4249 판결 등에서 대법원은 “보증도(LG)에 관한 상관습은 운송인으로 하여금 정당한 선하증권 소지인에 대한 책임을 면제함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증도로 인해 선하증권 소지인이 손해를 입는 경우 운송인이 그 손해를 배상할 것을 전제로 한다.”라고 했다. 즉, LG의 제출은 운송인의 법적 책임을 면할 수 있는 ‘면책 방패’가 아니라, 진정한 선하증권 소지인을 대신해 손해발생 시 배상할 의무를 약정하는 ‘배상 약정’에 가깝다.
특히, 현행 상법 제129조 등은 선하증권 원본을 제시하지 않고 수하인의 운송물 인도를 하는 것을, 무료 슬롯이 거절할 권리일 뿐 아니라 의무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무료 슬롯은 선하증권과 상환 없이 운송물을 인도하면, 설령 LG가 제출된 경우에도 선하증권 소지인의 권리 침해를 인정받아 손해배상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대한민국 대법원은 상기 판결 이후 여러 차례 무료 슬롯이 선하증권과 상환 없이 타인에게 운송물 인도 시 선하증권 소지인에 대한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의 불법행위가 성립하고, LG 제출 여부가 면책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취지로 계속하여 판시한 바 있다.
그런데 2023년 8월 31일 선고된 대법원 2018다289825 판결에서는 나아가, 선하증권과 상환 없이 화물을 인도받은 수하인(화주)에 대해서도 운송인과 함께 공동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한 바 있다. 이 사건에서 인도네시아 광산업자가 선하증권 원본 없이 화물을 인수한 한국의 매수인(화주)을 상대로 선하증권 원본 상환 없이 화물을 인도받은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상기 판결에서 대법원은 “선하증권의 정당한 소지인은 선하증권과의 상환 없이 운송물이 인도됨으로써 불법행위가 성립하는 경우, 운송인 또는 운송인과 함께 그와 같은 불법행위를 저지른 공동불법행위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라고 했다.
이는 선하증권 상환 없는 화물 수령이 단순히 무료 슬롯만의 문제가 아니라, 화주(수하인)도 선하증권 소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연대책임을 부담할 수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특히 화주가 선하증권 원본의 존재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선하증권의 원본과 상환 없이 화물을 인도받은 경우, 이는 선하증권 소지인에 대한 고의적인 권리의 침해로 평가될 수 있다는 점에서 화주 측의 주의의무가 더욱 강화됐다고 볼 수 있다.
위와 같은 취지로 선사는 최근 LG에 대한 수용 기준을 갈수록 엄격하게 설정하고 있는데, 법적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Surrender B/L(써렌더 선하무료 슬롯)이나 e-B/L 같은 대체방식의 확산도 이러한 경향을 반영한다.
결론적으로, LG는 상관습이나 실무상 편의를 위한 예외적 제도일 뿐, 운송인에게 선하증권 소지인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에서 벗어날 ‘안전판’이 아니다. 운송인과 화주 모두 LG의 발행을 신중히 하고, 원본 선하증권이 도착하기 전 화물이 항만에 먼저 도착할 가능성이 크다면 운송 계약 당시부터 계약당사자 간 합의로 Surrender B/L이나 e-B/L의 발행 방식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으며, 그렇지 않다면 화물 인도 시 선하증권 원본과 상환하는 원칙을 지키는 것만이 법적 위험을 최소화하는 안전한 방식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성우린 변호사는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전 팬오션에서 상선 항해사로 근무하며 벌크선 컨테이너선 유조선 등 다양한 선종에서 승선 경험을 쌓았다. 배에서 내린 뒤 대한민국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로펌에서 다양한 해운·조선·물류기업의 송무와 법률자문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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